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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에 귀농하여 농사를 짓기 시작한 감귤쥬스의 농사 이야기
감귤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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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5 16:56 농사 일기

본문 : 누가복음 14장 12절 ~ 14절

12 그러고서 예수님은 자기를 초대한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을 대접할 때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 사람을 초대하지 말아라. 그렇게 하면 그들도 너를 초대하여 네가 베푼 것을 도로 갚아 버릴지도 모른다.
13너는 잔치를 베풀 때 가난한 사람과 불구자와 절뚝발이와 소경들을 초대하여라.
14그러면 그들이 너에게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너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의로운 사람들이 부활할 때 하나님이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제목 : 잔치에 청할 손님은


지난 한주간, 반기문씨가 언론에 많이 등장했습니다. 반기문씨가 잘했나요? 아니면 잘 못했나요?

어느 여성작가가 쓴 책을 최근에 보았습니다. 자신의 풋풋했던 여고생 시절에 한가지 비밀이 있었는데, 그건 자신이 개고기를 좋아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여학생이 잘했나요? 아니면 잘 못했나요?

실은 이 작가가 좋아했던 남학생이 있었는데, 그 학생의 부모님이 보신탕집을 했고, 학교에서 그 남학생의 별명이 개고기였다고 합니다. 여고생이 개고기를 좋아한 것이 아니라 '개고기'라는 별명을 가진 학생을 좋아했던 것이지요. 여학생이 잘했냐, 잘못했냐를 질문하기 전에 사건의 배경을 자세히 알고서 대답을 하는것이 좋겠다는 말이지요. 반기문씨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사건을 두고 말이 많습니다. 반기문씨는 정치를 잘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이 녹록지 않았던 것입니다. 

누구든지 잘 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배도 잘 하고 싶고, 찬양도 잘 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마음과 현실이 늘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내 인생을 잘 살고 싶다면, 철저한 수고와 애씀이 뒤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잘 살고 있는가? 나는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봅시다. 

이승엽 선수가 2017년을 마지막으로 선수생활을 은퇴한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최고일 때 더 최고가 되고싶었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같은팀의 신입 선수와의 모임에서 자신보다 20살이나 어린 후배들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너희들이 야구를 잘 할 수만 있다면 때려서라도 그렇게 하고싶다고 했다네요. 내가 맞아서라도 잘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싶은가요? 내가 욕을 먹어가면서도 잘 할 수만 있다면 나는 그 길을 가겠다고 마음을 먹을 수 있는가요?

어느 교회의 지휘자가 성가대원이 노래를 잘 못하면 신발을 던졌다고 합니다. 그 신발을 맞은 성도는 다음주에 성가대에 참석했을까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힘들다고해도 잘 할수만 있다면 견디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난주에 저희교회에 부흥강사가 오셨습니다. 그 목사님은 처음 목회를 시작할 때 목회를 정말 잘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주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재능이 전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열심히 전도에 힘쓰다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합니다.

무언가를 잘 하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될 일이 무엇인지를 질문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자리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런 내용입니다. 초대받은 자리에 상석과 말석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상석에 앉고싶어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상석에 앉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잔치가 나만을 위한 잔치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초대받아야 할 사람들이 있는 잔치여야 합니다. 누군가를 위한 환대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야 합니다. 어느 주부가 이런말을 했다고 합니다. 수십년을 남편과 부부로 살아왔지만 어느순간 생각해보니 남편에게 자기는 아무 의미가 없는 사람이었다고. 남편의 마음 속에 자기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는 것이지요. 자기 혼자서 자리 잡고 베푸는 잔치가 의미가 있을까요? 초대해야 할 손님이 있어야 합니다. 

잘 차려진 식탁에 누구를 초대해야 할까요? 우리가 초대하고 싶은 사람은 아마 고마운 분이나 언젠가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싫어하는 사람이나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을 초대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요? 예수님은 잔치의 자리에 저는자와 앞을 못보는 사람과 가난한 자를 초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되갚을 능력이 없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이 당신의 이웃이라면 그들을 초대하십시오.

상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전적 의미는 둘 이상이 서로 북돋우며 같이 잘 산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상생을 하기 위해서는 상호 희생이 전제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습니다. 상생의 길은 십자가의 길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이 손해보는 만큼 상대방은 풍요로워지기 마련입니다. 갚을 능력이 없는 자들을 대접하세요. 우리 민족은 나그네를 뜻하는 '손'이라는 단어에 존칭의 의미인 '님'자를 붙여서 손님이라고 부르며 나그네를 잘 대접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헨리나우웬이라는 기독교 작가가 있습니다. 그분은 하버드대학교 교수였다가 교수생활을 은퇴하고 데이브레이크라는 중증장애요양시설에서 여생을 보냈습니다. 그는 '아담'이라는 환자를 돌보았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담을 돌보며 하나님을 깊이 만났다고 말합니다. 아담을 돌보는 시간이 가장 깊이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했다네요. 아무것도 되갚을 수 없고 감사하다는 말 조차 할 수 없는 아담을 돌보며 그는 하나님을 깊이 체험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도 아담을 통해서 회복되는 경헙을 했다고 합니다. 생각이 병들고 생각이 불구인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회복을 경험한 것이지요. 되갚을 수 없는 사랑,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입니다. 누군가를 열린 마음으로 돌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치유를 경험하게 됩니다. 되갚을 능력이 없는 자들을 돌보고 대접합시다. 

어제는 입춘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지만 추위 속에서도 새싹들은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복잡한 삶을 살고 있지만, 오늘을 기해서 삶의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새 사람(new being)이 됩시다. 

다가올 꽃의 계절에는 이 시대의 연약한 꽃들이 더 활짝 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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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자면...

1. 무언가를 잘 하고 싶다면 애쓰고 노력해야 한다.

2. 갚을 능력이 없는 이웃들을 대접하라


posted by 감귤쥬스
2016.02.27 02:08 농사 일기

(어느 프로젝트에 인터뷰를 서면으로 하게 되었다.)


1.     자기소개(단체일 경우, 단체 소개)

        안녕하세요. 저는 충남 홍성에 살고있는 농부 조대성입니다. 서울에서 2009년까지 살다가 2010        년 초에 이곳으로 내려와서 농사짓고 있습니다. 아내와 아이 두명과 같이 살고 있어요. 첫째는 엊          그제 어린이집을 졸업했고, 둘째는 이제 세 살입니다.


2.     활동소개
그동안 젊은협업농장이라는 곳에서 일하다가 작년부터 독립을 하여 꾸러미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꾸러미는 젊은협업농장에서 하고 있던 것이었는데요, 지금은 젊은 꾸러미라는 이름으로 60여 가정에 보내드리고 있어요. 셀러드와 함께하는 아침식사 꾸러미입니다. 지역에서 유기농으로 농사짓는 농장들에서 생산되는 셀러드채소, 두부, 평촌요구르트, 통밀빵, 어린잎, 유정란으로 구성되어 있고 계절마다 제철 야채와 여름동안에는 방울토마토를 추가하여 보내드립니다. (홈페이지는 young-farmers.co.kr)

작년부터는 마을에 새롭게 생긴 단체에서 사무일도 같이 하고 있어요. 마을에는 홍동저수지라는 이름의 커다란 저수지가 있어요. 저수지 주변의 네 개 마을을 묶어서 오누이권역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예전부터 저수지 주변에서는 오디, 누에, 냉이를 많이 생산했다고 해요. 그래서 세 작물의 이름을 합쳐 오누이라는 이름을 만들었습니다. 2013년부터 오누이 권역이라는 이름으로 마을권역단위 종합정비 사업이 진행되어왔습니다. 작년에 마을 주민들이 모여서 오누이친환경마을협동조합을 만들어서 권역사업으로 만들어진 건물을 관리하고 주민 대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지난 1월 한달동안은 마을에 살고있는 화가 한분을 모시고 지역주민 16명과 함께 미술교실을 진행했습니다. 하루 네시간씩, 5, 4주간 하루도 쉬지않고 진행되는 수업이었는데, 중도탈락자 없이 모두다 수료했습니다. 마을의 여성분들이 많이 참여했고 농부 아저씨도 두분이 참석했습니다. 농한기에 고스톱이 아닌 그림으로 시간을 보낸 참석자들은 자신들이 그린 그림을 보고 완성도와 숨어있던 재능에 깜짝 놀랐습니다.

작년 9월부터 제가 진행하는 기타교실에 면사무소 직원들과 마을 청년들, 농협직원 등 10여명의 수강생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는데, 악기를 배울 기회가 없던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저의 재능으로 도움을 드리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기타를 배우고 싶어하는 농촌분들이 많더라구요. 두 강의를 진행하며 농촌이라고 해서 농사에 대한 욕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과 배움에 대한 욕구도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올해 오누이친환경마을협동조합의 사업은 청년과 여성에게 초점을 맞추어 진행하려고 합니다. 농촌은 그동안 노인과 농부들을 위해 많은 프로그램이 진행되어 왔는데, 상대적으로 젊은 청년과 동네 아줌마들은 소외되어 왔습니다. 저희 마을에는 젊은협업농장과 행복농장, 옥계열매농장, 텃골농장 등의 단체에 20, 30대 청년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0대부터 60대까지 젊은 여성분들도 많이 있어요. 물론 70대 이상의 할머니들도 많이 있지만요. 동네 아주머니들은 자기들 스스로 한번도 여행을 가 본적이 없습니다. 젊은협업농장의 한 청년농부의 어머니가 일본어를 잘 하셔서 그분을 모시고 일본어 수업을 3월부터 진행합니다. 목표는 연말에 아줌마들끼리 일본여행가기입니다. 물론 가이드 없이 유창한 일본어로 여행을 하겠죠. 일본의 지역 공동체들을 여행하고 여행이후에는 아줌마들이 마을 공동체의 주체가 되어 여러가지 일들을 해나가는 주체로 활약하는 것 까지 기대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을 위해서는 작년부터 학습프로그램들이 진행되어왔습니다. 경북대학교에서 미생물학 교수로 재직하시다가 3년전에 풀무학교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계신 박완 선생님을 모시고 과학영농의 기본이 되는 식물생리학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땅에 꽃으면 자라는줄 알았던 청년들이 식물의 섬세한 생리활동을 이해하며 성장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몇일 전에는 지역과 교류가 있어왔던 북해도 대학에 수업을 듣는 청년들과 선생님이 몇명의 지역의 사람들과 합세하여 여행을 떠났습니다. 일본의 농업과 교육에 대해서 궁금한 점을 사전에 조사하고 방문지를 정해서 미리 일본측에 요청을 했고 아마 지금쯤은 열심히 일본을 누비고 다니겠죠. 일과 학습과 여행을 통해서 젊은 농부들이 아름답게 성장해가길 기대합니다.

작년에는 주로 밭농사를 지었습니다. 감자와 고구마를 재배했고 이장님과 함께 3000평정도 콩농사도 같이 지었어요. 비가 많이 안와서 작황은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협업농장에서 비닐하우스 재배를 하다 새롭게 노지 농사를 시작한 첫해이니 어려운 자연 여건속에서도 선방했다고 생각합니다. 올해는 콩농사와 함께 벼농사도 조금씩 시작해볼까 합니다.
마을 합창단은 두달간의 방학을 끝내고 3월부터 다시 시작해요. 2011년부터 6년째 하고 있네요. 작년에는 정기 공연은 못했고 마을 축제와 홍성주민자치센터 공연때 짧게 출연했습니다. 올해는 정기공연을 하는것이 목표입니다.

 

 

 

3.     활동 동기(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
쓰고 보니 참 여러가지 한다 싶네요. 농촌에서 살다보면 농사만 짓고 애 둘 키우며 먹고살기가 어렵습니다. 돈 벌려고 여러 활동을 하는건 아닌데, 결과적으로 여러가지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제 성격때문이기도 한것 같아요. 여러가지를 하는걸 좋아하거든요.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농사만 짓고 싶기도 해요. 농사만으로 먹고 살수는 없을까요? 농사만 지어도 생계에 대한 걱정없이 농부 스스로 자신을 존엄하게 여기며 품격있게 살 수는 없을까요? 농업을 천하게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와 그에 걸맞는 농산물의 낮은 가격이라는 현실에서 농부는 스페셜리스트보다는 제너럴리스트가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정부 보조사업 안내서도 부지런히 찾아봐야하고, 아르바이트 기회도 형편에 맞게 찾아보고, 할 수 있으면 서울에 가서 보따리 장사도 해야합니다. , 어쩔 수 없죠.

활동을 시작하게된 계기라는 것은 아마도 귀농을 하게 된 동기를 말하는 것 같은데, 내려온지 몇 년이 되다보니 나자신을 귀농자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그냥 농부, 혹은 지방의 소도시 주민으로 인식하게 되네요. 여기 생활에 익숙해졌다고 할까요? 서울에 살면서 성동구에서 성북구로 이사가서 이사간지 몇년차가 되었고 나는 아직 성동구 출신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여기 농촌도 마찬가지인것 같아요. 저는 이제 귀농자가 아니라 농부, 농촌주민입니다. 활동 동기도 생태적인 삶을 찾아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게 아니라 살고 있는 지역에서 생계를 위해 열심히 살고있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4.     기억나는 순간(활동하면서 느낀 희로애락 혹은 에피소드)
처음 논농사를 지었을 때가 2012년이었는데, 그 때가 기억이나네요. 농촌에서는 논농사는 남자가, 밭농사는 여자가 한다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논에는 주로 남자들이 활동하고 밭매는건 여자들이 주로 하죠. 저만의 느낌인지도 모르겠는데, 벼농사를 한번 짓고 나니 동네 어른들이 저를 농부로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잔소리가 확 줄었다고 할까요. 너도 이제 논농사는 좀 짓는구나. 그래 인정해주지.. 이런 느낌이었어요. 물론 논농사를 경험하니 농촌의 많은 것들이 이해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농촌은 논 농사 비중이 크죠. 그때 모내기할때 비가 안와서 논에 물대는것이 전쟁상황처럼 느껴졌는데, 아랫논 아저씨와 앞논 아저씨가 물 대는 문제로 xx놈 하며 싸우가다 몇일뒤 다시 웃고 지내는 모습을 보고 농사라는게 아.. 이런거? 라는 희미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어요. 내 농사에 대한 열정과 이웃과의 화합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본게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5.     앞으로의 목표
그냥 이렇게 고만고만하게 먹고사는 농부로, 농촌 주민으로 늙어가는게 목표입니다.


 

 

[추가질문]

Q1. 농촌과 젊음이란 단어가 이질적이다. 젊은 사람들이 농촌에서 일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농촌에 젊은 인력이 생기며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


 농촌과 젊음이 이질적인것이 참 슬픈 현실입니다. 농촌은 젊음이 연관검색어가 되어야 하는데 어쩌다보니 늙음이 연관검색어가 되어버렸네요. 농사는 몸을 쓰는 일입니다. 또한 자연에 대한 통찰력을 배우는 일입니다. 또한 우리 몸과 이웃을 먹여살리는 일입니다. 육체의 성장과 교육, 공동체 형성이라는 세 가지 일이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성장하며 배우기에 정말 좋은 직업입니다. 농촌에 젊은이들이 활동하며 없던 일들이 많이 생겼죠. 없던 일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변화입니다. 중요한건 이러한 변화가 사회적인 흐름이 되어야하고 지속가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홍성이라는 지역에 젊은이들이 와서 농사를 짓는것은 면단위에서도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크게보면 아주 작은 나비의 날개짓에 불과하죠. 제가 할 수 있는것은 작은 날개짓 이상은 안됩니다. 그 이상은 희망의 영역이죠. 하지만 이곳에서 젊은이들이 농촌에서 활동하는 모델은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Q2. 향토색이 짙은 농촌의 특성상 귀농(혹은 귀촌인들에게) 배타적인 성향이 있다고 하는데? 처음에 농촌에 정착할 때 어려움은 없었는지? 정착기의 에피소드가 궁금하다.


정착기때는 배타적 성향이 있는데, 이건 회사나 학교 교실과도 비슷합니다. 신입사원이나 전학생이 새로 오게 된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그 사원이 처음부터 단체 OT에도 빠지고 축제때 뒷치닥거리도 안하고 혼자서 독립적으로 활동한다면 아무래도 미움을 받겠죠. 농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편할것같아요. 저같은 경우는 윗집 할머니가 처음에 풀을 안깎는다고 자주 혼냈습니다. 지금은 그분, 저를 아들까지는 아니고 조카중의 한명 정도로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요. (참고로 저는 여기 내려와서 다섯 번 이사를 해서 지금은 읍내의 아파트에 살고 있어요. 다섯번의 이사는 물론 반경 10키로 내에서 이루어졌습니다. )

 

 

Q3. ‘협업을 기반으로 한 협동조합 운영 중이다. 농촌에서 협업이 갖는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


젊은협업농장의 생산 활동은 그만두었지만 조합원으로는 계속 활동중입니다. 협업농장의 가장 큰 매력은 혼자서 농사를 시작하기 어려운 청년들이 농사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농사는 초기 자본과 노동이 많이 투입되어야 하는 일입니다. 농지도 있어야하고 농기계와 시설 등을 갖추려면 천만원 단위를 넘어서는 자본이 필요합니다. 또한 농업 기술은 한 두해로 배울 수 있는 지식은 아닙니다. 일년에 한번만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주변 농부들이 하는 것을 따라하고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홀로서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농사를 짓고 있는 경우가 가장 이상적인 모델입니다. 그러나 저의 아버지는 농사와는 관계없는 분이예요. 저와 비슷한 청년들은 농사를 시작하기가 매우 어렵겠죠. 그래서 그런 청년들이 모여서 농지를 임대하고 지자체의 지원사업과 조합원들의 출자로 농장을 만들고 노동력과 지식을 모아서 농사를 지으니 3년차부터 안정적인 농장 운영이 가능해졌습니다. 또한 새로운 젊은 친구들을 농부로 키우는 인큐베이터 역할도 하게 되었습니다.

 

 

Q4. 본인은 농촌과 도시 생활을 모두 해봤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이것만은 도시보다 농촌이 매력적이다!’ 하는 몇 가지를 알려달라.


농촌의 매력은 사람이 많지 않다는것입니다. 가끔 서울에 올라가서 사람많은 지하철 체험과 교통체증 체험을 하게 되면 내가 몇년전까지 이런 곳에서 살았구나.. 싶은 안도의 한숨이 나옵니다.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은 익명성과 불특정 대중 속에서 공중에 느껴지는 살짝 떠있는듯한 불안함 대신에 안정감을 줍니다. 경계가 보이는 관계속에서 저는 도시에 있을 때보다 안정감을 느낍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경계가 보이는 관계망을 답답할 것이라고 예상하는데, 실제로 경험해보면 답답함은 없습니다. 여기는 학교나 회사처럼 촘촘하거나 계약서가 있는 관계가 아니라 느슨하게 연결되어있는 연대관계입니다.

불편한점은 차가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대중교통이 발달되지 않다보니 차가 없으면 이동이 불편합니다. 서울 살때는 차가 가끔 필요해서 렌트카나 가족의 차를 빌려 이용했는데, 여기서는 매일 차를 몰고 다닙니다. 

 

 

 

Q5. 본인이 지향하는 가장 이상적인 농촌은 어떤 모습인가?


이 질문은 어렵기도하고 쉽기도 하네요. 저는 농민기본소득이 꽤 많은 농촌문제를 해결해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농민들은 실제로 소득이 매우 낮고 그래서 불안합니다. 돈이 되는 농작물에 몰려드는 경향이 있어서 농산물 가격이 폭락과 폭등을 반복합니다. 농사에는 식량 공급이라는 중요한 기능 외에도 자연을 보호하는 공익적인 기능이 있기 때문에 기본 소득으로 농민들이 안정적인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합니다. 그러면 농사의 진입이 지금보다는 쉬워지고 농촌으로 인구 유입이 늘어나겠죠. 그리고 농촌 경제가 지금보다는 많이 살아나고 일자리도 늘어나리라 생각됩니다. 그동안 수조원이 농촌에 투입되었다고 하지만 사실 이 돈의 대부분은 건설회사와 농촌컨설팅회사가 가져갔거든요. 과장해서 말하자면 농촌에 남은것은 도로와 유지비가 매년 들어가야 운영이 될 수 있는 건물뿐입니다. 차라리 그 돈을 농민들에게 1/ n으로 나누어줬다면 지금과는 매우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요?

 

 

 

 

 

Q6. 농부로서 어떤 직업 의식을 가지고 있나? 사람들에게 본인의 직업에 대한 자랑을 한다면?

농부는 어려운 직업입니다.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농사로 돈을 버는 것은 정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수십년간 농사지은 베테랑 농부들이 매년 수익이 줄어 도시에서 시위를 하다가 한분이 백일째 의식불명중인 현실을 생각해보세요.

하지만 자연과 함께하는 행복은 있습니다. 그리고 수십년간 사람이 떠나고 사라지고 노화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가능성은 무한합니다.

 

 

Q7. 본인이 생각하는 더불어 행복한 세상이란?

사회에서 가장 약한 사람이 행복한 세상.


posted by 감귤쥬스
2016.02.27 02:02 농사 일기

하루키의 1Q84를 다시 읽었다. 한번 읽은 책을 다시 읽은적이 별로 없는데..

외국 소설을 읽으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어려움이 있다. 바로 등장 인물 이름 외우기가 참 어렵다는 것이다. 덴고, 아오마메, 이런 일본 이름을 어떻게 금방 외울 수 있을까. 그래서 처음 읽을 때 소설에 몰입하는게 어려웠다. 초반의 어려움을 좀 참고, 이건 무슨 내용이지? 싶어서 앞의 내용을 확인하고 싶은 충동을 참으면서 정주행 하다보면 스토리 라인이 그려지고 책에 몰입하게 된다. 

 처음 보았을 때, 책 내용에 확 빠져들었던 기억이 난다. 충격적이게 재미있었다. 그러나 너무 길어서 이 책을 다시 보게 될 상황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최근들어 하루키의 여러 소설들의 줄거리가 헷갈리는것이다. 그래서 읽은 책을 다시 읽어보자..고 결심했다. 두 번째 읽으니 초반에 이름이 외워지지 않아서 생기는 어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오랜만에 반가운 이름을 만난 기분이었다.

 스토리라인을 잡다 보면, 나는 좀 책을 빨리 읽는 편이라 세세한 묘사 같은건 대충 읽고 건너뛰는 편이다. 두 번째 읽으니 사건 전개의 중간중간에 나오는 상황 묘사라든지, 심리 묘사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 소설가는 어떻게 이런 디테일한 묘사에서도 중복되는 경우 없이,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혹은 상상하지 못했지만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싶었다. 

 3권의 경우는 처음 읽었을 때 2권의 내용이 너무 충격적으로 재미있어서 3권은 끝내기식으로 빨리 읽었다. 그래서인지 거의 처음보는 내용인듯 싶었다.

 두번째 읽는 것이지만, 읽고나니 의문점이 더 든다. 의문점을 정리하지 않고 몇일 지나다보니 그 의문점이 무엇인지 희미하다. 안타깝다..


종교집단의 아동성폭력, 종교적 신념에 의한 아동학대에 평범한 자아를 형성하지 못한 아오마메, 어머니 없이 아버지와 괴로운 주말을 늘 보냈던 10세의 덴고. 유독 아동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난다. 어린시절 충분히 사랑받아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무언가 결여되어버린 상태로 어른이 되어버리고, 그것을 채우지 못한 채 두 주인공은 살아가다 새로운 세계에서 결여된 부분을 운명적인 서로의 만남으로 채우는 이야기. 가장 약한 자는 10세 이하의 아이들이다. 그들에게 어른들이 신념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가.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둘째는 책을 읽어달라며 늘 관심을 갈구한다. 아내는 하프로 일을 한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진 요즘, 매 순간이 그들에게 줄 수 있는 부모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섬세하게 돌보고싶다.

posted by 감귤쥬스